재미있는 책 하나 소개 드리려 합니다.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취미 글쓰기를 배워보려고 글쓰기, 작가 관련 책들은 모조리 읽는 중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인기차트 상단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으면 고르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목이 정말 올드하고 특색이 없는데 재미도 없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언밸런스하게도 한 장만 넘겨 책 속으로 들어가면 정작 그 이야기는 생동감 넘치고 사람 냄새 풀풀 나는데요. 마치 작업실에서 김치찌개에 소주 반잔 들이켠 상태에서 친구에게 전화 걸어 푸념하는 듯한 내용이라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뭐 이런 책이 다 있지? 왜 인기차트에 오를만했는지 한번 읽어 봅니다.
책 정보
제목 |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
발행 | 2020년 11월 16일 |
쪽수 | 284쪽 |
작가 | 김호연 |
김호연 네이버 검색 | |
개인홈페이지 김호연 닷컴 |
독후감 |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가의 시점으로 실제 경험에 기반해 전개됩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풋내기 작가가 신입의 당찬 패기로 막내작가 생활을 때려치우고 독립을 했지만 만만치 않은 세상 앞에 결국 백수가 됩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뒤 맛본 좌절감에 꿈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찾게 되지만 다시 글쓰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전업 작가로 독립하게 됩니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됐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인 후에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고단한 작가의 삶에 존경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들기도 했어요. 챕터 별로 인상 깊었던 구절을 간단한 정리하며 생각들을 공유해 보려 합니다. 지금부터 마음을 열고 천천히 함께 보시죠.
1장 초보 시나리오 작가의 습작 지옥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무실 인테리어와 직원들의 외모를 기준으로 회사를 판단하는 신입사원일 뿐이었지만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도움으로 일을 충실히 배운다. 한석규라는 대배우의 입에서 자신이 쓴 대사가 흘러나오니 마치 ‘본인의 능력으로 영광을 누리고 있다’라는 초심자의 착각에 빠진다. 또 ‘나 혼자서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나는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이 그릇에 담기기에는 아까워’라는 착각 속에 퇴사를 결심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귀여운 신입사원과 다르지 않았고 보통 직장인의 코스를 밟는 모습에 공감이 됐습니다.
2장 달콤 쌉싸름한 키친 테이블 라이팅
누구는 평생 근처에도 가보기 힘든 베스트셀러가 즐비한 편집실에 다시 취직하게 된다. 여기서 또다시 훌륭한 선배들을 만나 충실히 일을 배우며 내공을 쌓아간다.
여기서는 너무 부러웠습니다. 회사를 박차고 나온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내 마음이지만 그것을 만회하고도 남을 기회를 또 잡다니.
“나는 제목 없는 글은 쓰지 않는다. 제목은 글이라는 항해를 시작하기 위한 나침판이다. 글을 써나가는 현란한 과정에서 중심을 잊지 않게 해 준다.”
이 부분은 인상 깊고도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목의 중요성은 백 번 강조해도 과하지 않지만, 보통 출판사가 책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내용과 관계도 없는 어그로성 제목을 붙여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보통 주제를 정해놓고 글을 쓴 뒤 내용을 함축하는 근사한 제목을 마지막에 짓는 스타일이라 초고가 나오기도 전에 제목을 짓고 시작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인지 김호연 작가의 스타일인지는 모르지만요.
“다음 내용이 궁금하지 않으면 잘 쓴 글이 무슨 소용인가?”
이 부분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라는 책에서 소개한 기법이 생각났어요.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고 해당 내용의 문턱까지 독자를 끌고 가 말하기를 멈추면 독자 스스로 상상하게 된다는 기법입니다. 실제로 이 책은 재미가 있어서 읽는 내내 다음이 궁금했고 덕분에 술술 읽혀 편하고 좋았습니다.
3장 무지막지한 전업 작가 생존기
3장부터는 전업작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을 다룹니다.
“작업실은 작가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에 저는 깊이 동의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시장 바닥에서 공부해도 사법고시를 패스한다는 그 집중력을 높이 사는 스타일이기 때문인데요. 여하튼 이 표현은 김호연 작가의 스타일을 알고 난 뒤에 다시 보니 오히려 더 의아해지기만 할 뿐입니다. 동인천 시절에 그가 얼마나 진심이었고 아직까지 얼마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되었는지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유명 작가가 되고 결혼을 한 뒤에도 글쓰기를 위해 작업실을 구해 몇 달씩 집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자신만의 노하우인 것은 확실해 보이고요. 어쩌면 책 후반부를 읽으면서 ‘작업실’이라는 의미가 단순히 글을 쓰는 공간이 아니라 생계를 포함해서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끝없는 고독과 수없이 반복되는 고배는 필수. 운까지 필요하다.”
“오랜 동료 거인에게 전화를 건다. 형 쓰고 있죠? 어, 쓰고 있지.”
ㅋㅋ 말이 필요 없죠. 그냥 쓰는 겁니다. 작가는 ㅎㅎ 고생 많으십니다.(리스펙)
“편집자와 작가 지망생으로 만난 사이는 먼저 프로 소설가로 데뷔한 지망생의 조언을 받는 소설가 지망생의 관계로 바뀌었다. 이럼에도 서로의 실력에 대해 의심이 없고 꼬임이 없었다.”
저는 이 부분을 대단히 좋게 봤습니다. 김호연 작가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고요. 글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 스스로도 골방에 틀어박혀 머리 싸매고 글만 쓴다고 좋은 글이 써져 대박이 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작가는 결국 사람과 섞여 사람 이야기를 쓰며 기회를 창출하고 성공에 다가갈 수 있게 되는데” 이런 깔끔하고 털털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라는 직업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분야에서도 필요한 정말 부러운 덕목입니다.
“전업 작가로 돌아선 후 글을 쓰는 것만큼 파는 것도 어렵다는 걸 느꼈다.”
그저 좋아서 쓰기 시작한 글이 생계와 맞물리기 시작할 때 타협점을 찾게 되는 과정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어찌 됐든 팔려야 독자에게 읽힐 것이고 돈을 벌어야 다음 글을 또 쓸 수 있으니 상업적인 마케팅이나 영업 부분도 간과할 수는 없었겠죠.
4장 혼자 쓰기, 같이 쓰기, 닥치는 대로 쓰기
전업 작가 생활의 실패 끝에 좌절을 느끼면서 다시 편집자 생활로 돌아갔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사실상 포기였고 끝이었다. 스스로와의 약속에 가족과의 약속이 더해져 직장 생활을 시작하지만 또 견디지 못하고 두 달 만에 다시 작가로 돌아오게 되었다. 진정한 좌절을 겪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지만,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작가 병이 도졌다.
박미라 작가의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를 보면 자신의 내면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자신도 잘 모르는 진정한 자신의 본질.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다시 퇴사라는 결단에 용기를 내었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정을 존중하고 “이제 좀 제발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응원했습니다.
“독서는 작가의 집필의 근육이다”
정말 기발한 표현이네요. 이런 표현은 어떻게 생각해 낼까요?
밑바닥까지 다녀온 후 제2의 작가 생활을 더 이상 놓치지 않기 위해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 했다.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과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어 월급을 받으며 나름 괜찮은 생활을 하며 지냈다. “글을 어떻게 같이 쓰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고 방향을 잡고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이 시기는 프로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한 큰 교훈을 얻은 터닝 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런 게 바로 중견 작가의 짬바겠죠.
좋은 시절도 끝나고 다시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온 뒤 세상의 모든 공모전과 투고에 탈락하며 여지없이 좌절 속에 빠지게 된다. 견디지 못하는 것은 운이 없었기 때문인데, 그 운에 닿을 수 없는 것은 내 글 실력 때문이었다. 실력은 한 번에 늘지 않는다. 물은 정확히 100도에 끓지만, 글쓰기는 꾸준히 걸어 올라간다고 99층에서 100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자기 스스로 지금이 99도 인지 49도인지 알 수도 없고 온도계가 없어서 생살을 넣어서 데어보기 전까지 알 수가 없다.
이 구절은 정말 막막한 작가의 심정을 처절하게 표현하고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 하랑 작가의 책 ‘그렇게 작가가 된다‘에서 본 “심판이 없는 복싱 시합에서 링 위에 홀로 올라가 시작과 끝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라는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글쓰기의 모든 과정을 혼자 책임져야 하고 심지어 심판이 없기 때문에 이만하면 되는지 아닌지 판단도 스스로 해야 하며 끝난 뒤에도 불안감을 쉽게 떨치기 어렵다고 하네요. 그래서 더욱 내 글을 같이 봐주고 피드백 해줄 좋은 동료가 필요한 거 같습니다.
“글쓰기는 글쓰기가 다가 아니다. 생활에 닿아있고 사람에 닿아있다.”
같은 맥락이죠. ‘글쓰기는 사람이다.’라고 표현해도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토리는 재밌어도, 웃겨도 다 소용없어. 그럼요? 궁금해야 돼.”
명언이 쏟아지네요. 독자의 손에 책을 쥐는 것은 제목 탓이라고 해도, 첫 장에서 둘째 장으로 넘기는 것은 작가의 필력 탓입니다. 쏟아지는 자극적인 유튜브 콘텐츠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을 넘기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요?!
이후 강제규 감독의 프로젝트 팀에 합류를 제안받아 팀으로 활동하는 법을 배우고 다지며 생계를 이어간다.
정말 안 그래도 예민한 글쓰기 과정에서 둥글둥글한 성격은 필수인 것 같습니다.
“한 업계에서 존경하는 인물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성공이다.”
“작가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고립이다. 훌륭한 팀을 깨고 제 발로 뛰쳐나와 나 홀로 작가를 선택한 것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꼭 훌륭한 스승이 아니더라도 그의 주변에는 친구 매직이나 동료 서진 씨, 그리고 백작가와 같은 든든한 지원군이 늘 함께 했었죠.
5장 데뷔: 창작의 망망대해에서 잠시 휘파람 불기
“글쓰기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스티븐 킹”
명언의 키워드가 고난과 역경에서 행복으로 바뀌네요. 앞으로 분위기가 반전될 복선인가요?ㅎ
7년의 무명 전업 작가 생활을 보내고 세계일보 우수상 당선된다. 미치게 기쁜 순간이지만 그래도 살림살이에 변화는 없었다. 실제로 책이 나와 서점에서 팔렸고 내 책의 리뷰를 읽고 있는 영광의 순간에도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했다. 소설 하나를 성공 시켰어도 다음 소설을 쓰는 것이 만만치 않다. 제대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 년 정도는 시간이 필요한데 ‘본 업’을 하며 돈을 벌면서 그 일 년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생계 때문에 좋아하는 글쓰기 외에 본업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ㅠ
그런가 하면 영화화되고 연극화되며 내 글은 다시 각색되고 새로 태어나며 결국 작품은 배우의 것이 된다. 이때 나는 자식 같은 글을 기쁘게 보내주고 새 작품을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6장 작업기: 올해는 소설을 쓰고 내년에는 시나리오를 씁니다.
소설을 한 번 써본 사람이 그 일련의 과정을 알면서도 두 번째 소설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생활고는 여전하다.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성공을 시켜야만 세 번째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부담이 더해진다. 당시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은 평이 엇갈렸고 세 번째 책을 쓸 돈을 벌지는 못하게 된다. 다시 돈이 되는 일을 찾아야 했고 또 시나리오를 썼다.
“소설이 혼자 쓰기라면 시나리오 각색은 다시 쓰기, 고쳐 쓰기, 혼자 쓰기이다. 개성은 줄어들겠지만 그래야 상업영화로써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부분은 초짜 시절 자신감만 꽉 찬 신인의 모습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성숙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각고의 노력을 거쳐 투고를 한 다음에는 떨어졌다 생각하고 잊어라. 어차피 거의 대부분은 떨어지니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다음 작품을 시작하는 게 낫다.”
선배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주옥같은 조언이네요. 그런가 하면 성공을 맛본 적이 있는 인지도 있는 작가의 마음속도 그리 여유 있는 편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7장 네버엔딩 스토리텔러 스토리
초고를 쓸 때는 창작자여야 하고 고쳐 쓸 때는 편집자여야 한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선수와 코치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셈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영화, 시나리오, 출판, 소설 등 다방면의 실무 경력을 쌓은 것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늘 지나고 알게 되지만 어디서 뭘 하든 진심으로 일을 대하고 최선을 다하면 결국 자기 자산으로 남는 것 같아요.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 종일 글을 써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경험을 했다. 내가 쓴 글이 내 밥이구나. 내 글이 이렇게 맛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진 돈 한 푼 없이 먹고 살 걱정을 하며 꿈을 접었던 그가 이제는 스스로 밥을 굶어가며 글을 쓰며 행복을 찾는다 하네요.^^ 멋지게 성공한 그의 모습 위로 그동안 고생했던 모든 순간이 오버랩되며 기억됩니다.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이 책의 제일 좋았던 점은 ‘글을 잘 쓰는 법, 공식들과 관련된 사례’ 등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인생 안에 글쓰기라는 소재가 어떻게 녹아있고 그에 임하는 자세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표현해냈다는 점입니다. 공감되고 읽기 편했으며 덕분에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전달력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특유의 털털한 성격으로 살면서 맺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발전시킨 결과 조언과 위로, 일자리 소개와 영감 전달 등으로 이어졌던 것은 정말 부럽고 대단하십니다. 성공의 물꼬를 튼 작품 망원동 브라더스 역시 자신의 인생에서 사람들과 나눈 진솔한 이야기가 아닌가요. 엄청 고집쟁이 같은데 댓글은 또 일일이 확인하는 눈치 많은 작가, 글쓰기를 미치게 좋아하지만 또 현실과 적정 수준에서 타협할 줄 아는 작가, 그의 글 속에는 항상 사람 이야기가 가득한 훈훈한 작가 김호연 님! 책 재밌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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